예로부터 한의학에서는 단 한번 시술로서 병세가 소멸된 경우를 일도쾌차(一到快差)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환자나 의료인 모두가 일도쾌차를 꿈 꿀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임상에서 일도쾌차를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발목 염좌(捻挫)의 경우 단지 침 1회 시술로 현저히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혈(瀉血)침법이 그러한데요, 혈맥을 트여서 어혈(瘀血)을 배출시키면 침을 맞자마자 바로 개운함을 느끼고 절면서 왔다가, 멀쩡하게 걸어서 가서 바로 회복됩니다.
사명대사라고 하기도 하며, 혹은 사명대사의 수제자라고도 하는 침술의 대가 중에 사암도인이 있었습니다. 오행의 원리를 활용하여 보사(補瀉)를 구사하는 사암침법의 창시자인데 그 분이 쓴 ‘사암도인 침구요결(舍巖道人 鍼灸要訣)’이란 책을 보면 수년간 고생했던 질환들이 단 한 번의 침술로 쾌차하는 경우가 흔하게 등장합니다. 사암도인이 아니더라도 임상 경력이 쌓인 의료인들은 임상에서 일도쾌차의 경험을 자주하게 됩니다. 병소(病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막힌 기혈을 트여 주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통증이 소멸되고 편하게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의사뿐만이 아니라 탈구가 되었을 때, 이를 교정만 해줘도 바로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이 역시 일도쾌차라고 볼 수 있으며, 몸에 이물질이 유입되어 생기는 질병에 대해서 단 일회의 수술 치료법으로써 완치를 시켰다면 이 역시 일도쾌차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일정한 치료 시간이 필요한 감염성질환이라든지, 병이 이미 고황(膏肓)속을 들어간 질환의 경우에는 화타와 편작이 달라붙어도 일도쾌차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환자가 일도쾌차하고 싶은 마음이나 의료인이 일도쾌차를 이루겠다는 마음이 욕심일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환자든, 의료인이든 지나치게 일도쾌차(一到快差)에만 집착한다면 오히려 조급한 마음에 치료가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도쾌차에는 다소 함정이 있습니다. 만일 증상만을 소멸시킨다면 질병의 치료와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비교적 가벼운 발목 염좌 질환일지라도 오늘 다쳤다면, 오늘 단 한 번에 쾌차할 수 없습니다.
증상만이 소멸된 것을 일컬어 일도쾌차라고 한다면 이는 질병치료의 본질과 벗어납니다. 예컨대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진 사람이 최면치료를 받고나면 당장 물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도 있다면, 이 역시 일도쾌차(一到快差)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최면이 풀리면 그러한 증상이 재발하기 일쑤입니다. 치통, 관절통증, 생리통, 두통 등에 쓰는 진통제의 경우도 일도쾌차와 같은 기분을 느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재발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의 불면증 치료약, 피부 가려움증에 쓰는 스테로이드 연고, 기타 호르몬 성분의 합성약품들도 단지 증상만을 소멸시켰을 뿐, 병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도쾌차에만 얽매어 증상만 다스리다가는 정작 병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를 넘어서 병의 근본을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허준 선생은 다음의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옛적에 신성神聖한 의사들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서 병이 나지 않게 하였다. 지금 의사들은 단지 사람의 병만 치료할 줄 알고 마음을 다스릴 줄은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좇는 것이며 원인을 찾지 않고 나타난 증상만을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古之神聖之醫 能療人之心 預使不致於有疾.今之醫者 惟知療人之疾 而不知療人之心.是猶捨本逐末 不窮其源 而攻其流 欲求疾愈不亦愚乎)」
그렇습니다. 일도쾌차에 집착하여 증상만을 치료하다보면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좇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경우는 증상만 개선될 뿐, 병이 제대로 나을 수 없습니다. 물론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증상치료에만 만족하다가는 오히려 제대로 병을 고칠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병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음을 동의보감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서양의학에서도 스트레스가 질병발생에 있어 절대적인 요소가 됨을 여러 의학논문들을 통해 발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기에 명상이나 인문학 공부 등을 통해서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는 치료법이 점점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마음을 평온하게 가져야 원인치료가 되는 걸까요?
스트레스가 쌓이고 마음이 불안정하면 그것이 곧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병증이 지속하여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마음이 평온해지면 자율신경계가 안정되고, 면역기능, 즉 자연치유력이 향상됩니다. 그러므로 병을 완치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의학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무릇 참된 침 시술을 하려면 반드시 먼저 정신을 다스려야 한다. 그리하여 오장을 안정시키고 몸 각부의 혈맥의 징후가 편안해진 다음에 침을 놓는다. (凡刺之眞 必先治神 五藏已定 九候已備 後乃存鍼)」모든 치료를 시작함에 있어서 시술하는 의료인과 시술받는 환자 모두 마음의 평화가 선행되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는 병의 증상을 일으키는 보다 근본적인 요소에 접근하여 원인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흐려진 흙탕물에서 흙을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흙탕물을 흐리게 하는 미꾸라지를 잡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25년간의 한방심리학을 연구한 임상경력을 통해 다음처럼 세 가지 실천 사항을 제안해 봅니다.
첫째, 내게 진정 유익하고 행복한 길이 무엇인지 늘 깨어 헤아린다.
둘째, 내 건강을 해치는 나쁜 생활습관을 정확히 인식한다.
셋째, 맑고 따듯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런 장소를 자주 찾는다.
홀로 스스로 깨쳐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기운이 흐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를 찾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즉, 마음이 절로 평화로워집니다. 이렇듯 참된 치유의 방법은 그 방법이 행해지는 실천이 뒤따라야 비로소 치유가 일어납니다.
먼저 마음의 평화를 찾지 않고 일도쾌차(一到快差)에만 집착하여 증상만을 완화시키려다보면 오히려 질병이 더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안정시켜 면역능력과 자연치유력을 향상시켜서 근본적인 치유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비록 오래된 질병이라고 할지라도 빠른 치료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일도쾌차(一到快差)입니다.
증상완화치료와 원인해소 그 둘 다 필요하지만 원인해소치료가 먼저 할 바입니다. 병의 원인이 되는 마음을 다스리면서 그 다음으로 증상을 완화시켜나가는 치유법에 관심을 둔다면 그가 의료인이든, 환자든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의 치료는 지혜로운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일도쾌차가 가능합니다. 바른 치유법을 통해 질병을 잘 극복하여 건강하게 살아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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