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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야기/Medical

이진복한의원 녹용에 대해

by 이진복한의원 2021. 3. 15.

올바른 의약품

녹용다시 보기

 

한의학의 보법(補法)은 서양 의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요 치료 기술이자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키는 슬기로운 문화이며 자랑입니다. 백초(百草)가 모인 약장에는 인삼(人蔘), 황기(黃芪), 당삼 (黨蔘) 등 힘 있는 보법 약재들이 가득한데, 그중에서도 고금 의가들이 단연 으뜸으로 꼽는 것은 녹용입니다. 그러나 희귀성과 비싼 가격 때문에 그간 녹용의 산지와 가공, 유통 등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못했고, 그로 인한 소비자의 불신과 오해가 쌓여 녹용에 대한 진실이 마치 판도라의 상자 속에 감춰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제도 안에서 규격화되고, 신뢰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제조되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처방으로 탄생해야 합니다.

 

남극에 가까운 땅이라 매우 추운 뉴질랜드 남섬에서는 상체가 발달한 건장한 체형의 사슴들, 특히 머리에 무거운 뿔을 달고서도 높은 장애물을 빠르고 가볍게 뛰어넘는 사슴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눈 덮인 추운 산속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양체(陽體)인 사슴, 그중에서도 머리를 뚫고 솟아오르는 녹용은 폭발적인 목기(木氣)가 함축된 극양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 양기를 주체할 수 없는 수사슴은 50여 마리의 암사슴조차 부족한지 온몸의 기운을 뿔에 올려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봄을 맞아 새순처럼 뭉툭하고 부드럽게 돋아나기 시작하는 녹용은 자라는 속도가 죽순(竹筍)에 필적할 만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여름을 거치며 두 개, 세 개, 네 개의 가지로 펼쳐지며 골질화 됩니다. 이 모습을 약효로 추상해 보면 생명력인 원양(元陽)이 쇠하고, 골수와 기혈(氣血)이 허하고, 근골(筋骨)이 마르고 약해지는 환자에게 꼭 녹용을 처방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소중하고 귀한 녹용의 약효를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가공 제조기술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이런 믿음에 기초해 녹용을 다루고 있는 한의사로서, 녹용 산지와 제조 및 유통의 현장에서 바라본 올바른 의약품으로서의 녹용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국내 녹용 시장 현황과 뉴질랜드 녹용의 발전

 

- 1980년대 이전 재래시장에서 지금의 산업화까지 녹용의 비약적 발전

 

한국은 녹용 수요가 특히 높습니다. 한국 녹용 시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경제 성장과 함께 크게 성장해 왔으며 현재 전 세계 녹용의 80% 이상을 최종 소비하고 있습니다. 국내 한의학계에 사용되는 녹용의 99%는 뉴질랜드, 러시아, 중국산이며 국산은 매우 미미합니다. 국산은 일본이 원산지인 꽃사슴 녹용과 1980년대 캐나다에서 수입한 엘크사슴 녹용이 있는데, 절각 시기는 뿔이 돋은 후 90일 전후 정도가 됩니다. 주로 털을 제거하지 않은 생 녹용 상태로 유통되고 건조해도 회분 함량이 매우 높아 의약품으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 초반까지도 상업적인 녹용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식물성 한약재처럼 기준 및 시험법규정이 없었고 유통되는 제품 정보는 전적으로 공급자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시기의 녹용은 러시아산과 중국산이 주종을 이루었고, 홍콩을 중심으로 유통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뉴질랜드는 고기용 사슴 사육 두수가 많았지만 녹용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데 88올림픽 이후 한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으로 한의계의 녹용 수요가 증가하자 뉴질랜드 정부와 사슴 산업계는 한의학의 수준에 걸맞은 고품질 녹용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소와 유관 단체를 만들고 전통적인 사육방식에 과학적인 현대 시스템을 도입하여 4,500개의 목장에서 150만 마리의 사슴을 사육하는 세계 최대의 사슴 사육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수 녹용 생산을 위한 양록(養鹿) 프로그램에 많은 투자를 하여 그 당 시 이미 현재 수준의 녹용 품질에 도달하였습니다. 또한 한의학계의 조건에 부응하기 위해 절각 시기를 새순이 돋기 시작한 후 55~60일에 맞추어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뿔을 생산하는 등 한국 소비자를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둘째, 뉴질랜드 녹용 산업 성장의 비밀

 

- 건조기술의 개발

 

녹용은 1980년대 초까지 음식을 하듯 부뚜막에서 끓는 물에 삶은 후 자연 바람에 말리는 방식으로 건조하였는데 동물성 약재라 건조 불량으로 내부가 부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도 재래방식으로 건조하는 지역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축산 선진국 뉴질랜드는 1980년대 말부터 현대식 장비를 이용해 약효를 보존하면서 건조하는 저온 가공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한국의 녹용 가공회사들이 사용하는 클린룸 저온 건조의 초석을 마련합니다. 생녹용을 온수와 원적외선을 이용하여 증숙한 다음, 공조 장치가 공급하는 저온 살균 공기가 순환하는 클린룸에서 건조를 시작합니다. 한 달 이상 녹용이 충분히 건조되면서 숙성되는 과정을 거쳐 건 녹용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녹용 건조는 단순히 물을 제거하는 과정이 아니라 녹용의 약효가 잘 우러나올 수 있도록 자연 바람에 건조하듯 장기간 서서히 숙성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 청점 발생을 최소화 한 현대 건조방식

 

러시아산과 중국산 녹용은 주로 자연 바람만을 사용하는 재래식 건조 방식으로 만드는데, 농장의 환경과 시기에 따라 습도와 기온이 일정하지 않은 때가 있어 건조 녹용의 표면에 청점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가공이 매뉴얼화 되어 있는 뉴질랜드산은 농장에서 절각 즉시 급랭하여 냉동 보 관하였다가 현지 공장으로 옮겨 건조 가공하거나, 냉동된 상태에서 바로 한국으로 수출하여 클린룸 시스템으로 건조 가공하기 때문에 재래식 건조와는 달리 청점 발생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뉴질랜드 녹용 산업의 성장과 함께한 한국의 녹용 가공법은 현재의 의약품 규격에 충분히 맞출 수 있는 최첨단으로써 그 효능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셋째, 한국의 첨단 녹용 제조방식

 

- 클린룸 시스템(Clean Room system) 건조방식

 

클린룸 시스템은 해발 2,000m의 자연을 이용한 저온 건조 가공법을 공조학적으로 분석한 후 인공적으로 동일한 환경을 조성해 건조하는 방식입니다. 이 클린룸 시스템은 공기를 100도 이상으로 가열하여 멸균 공기로 만든 후 다시 18도 이하의 저온으로 냉각시킨 후 룸 안으로 유입시켜 녹용 주변을 초저습 상태(상태습도 10%)로 유지시켜서 유효 성분을 파괴시키지 않고 수분을 건조하는, ‘좋은 날씨의 자연 건조에 가장 가까운 방식입니다.

 

- 원적외선 쿠킹 살균

 

이 과정은 고온수 살균 후 일정 시간 고온으로 열을 가해 증식 가능성 있는 세균이나 병원균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열 사우나 방식을 현대화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각종 균이 완벽하게 살균되고 녹용 내부의 혈이 숙성되므로 의약품으로서의 가치가 부여됩니다. 원적외선 히터를 이용하면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골고루 살균할 수 있습니다.

 

- 저온 진공 건조 시스템

 

진공 상태에서는 10도 이하일 때 물이 증발한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건조 후반기의 시간을 단축시킨 방식입니다. 클린룸에서 저온 건조시킨 녹용을 진공 탱크에 넣고 완전 진공 상태(759.99mmHg)로 만든 후 마지막 남아있는 수분을 증발시켜 건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녹용의 색상과 유효 성분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전지 상태의 생 녹용은 수분이 제거된 건 녹용으로 건조가 됩니다.

 

제조시설(클린룸 저온 건조 내부, 원적외선 쿠킹 살균, 진공 건조시스템)

 

- 절편 및 시험과정

01 거모과정 국내 최초로 거모 기계를 사용하여 물리적인 힘으로 털을 뽑아내어 거모(去毛)합니다.

02 주침과정 털을 제거한 후 42도 정도의 청주를 주입하고 하루 정도 재워둡니다.

03 절편 하루 동안 술에 재운 녹용을 직각절단기로 1.5~2mm 정도로 얇게 절편합니다.

04 건조 절편 한 녹용을 건조망에 골고루 펴서 정리한 후 바람으로 건조합니다.

05 선별 24시간 이상 건조한 후 선별합니다.

06 시험 포장 전 대한약전 생규집의 녹용 절편 항의 기준 및 시험법대로 시험하고 비적합품을 가려냅니다.

 

- 포장 과정

시험에 적합으로 확인된 것만 선별해 포장합니다.

 

1) 녹용의 털을 제거하는 거모(去毛) 방식은 토치 가스불로 털을 태우는 재래방식에서 털을 뽑는 추모(抽毛)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토치 가스 불을 이용한 방식으로 털을 태워서 제거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녹용 표면에 벤조피렌 같은 이물질이 잔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한 결과 물리적인 힘으로 털을 뽑아내는 방식이 매우 청결하게 제거할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털을 뽑아내어 제조한 녹용의 외표 면은 전지 상태일 때나 절편 되었을 때 아주 반질반질하여 마치 광택이 나는 듯 청결합니다. 공진단(拱辰丹), 반룡환(斑龍丸), 고암심신환(古庵心腎丸), 녹용산(鹿茸散) 등의 산·환제뿐만 아니라 탕제에도 아주 위생적으로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분골 팁 부분이 보존된 녹용과 제거된 녹용이 있음을 알고 선택하여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녹용의 제일 윗부분인 분골 팁을 면도날처럼 얇게 썰어서 가다랑어 포처럼 만들어 뜨거운 물에 우려내 녹용 특유의 향을 즐기는 차 문화와 분골 팁을 요리에 뿌려 음식 전체에 향을 입혀서 먹는 식문화를 만들었습니다. 2000년까지 중국에는 매우 작은 팁 시장이 있을 뿐이었는데 경제가 고도로 성장하면서 팁 시장의 규모도 커지게 됩니다. 처음엔 뉴질랜드와 한국에서 분골 팁을 구매해 가다가 2010년부터 한국과 뉴질랜드의 건조 기술을 조금씩 배운 후, 지금은 뉴질랜드산 생 녹용을 직접 수입해 건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내수시장이 팁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녹용의 분골 팁을 제거하고 남은 95%의 몸통은 다시 한국에 팝니다.

 

 

넷째, 녹용 제조 유통 상의 문제점과 개선안

 

녹용 시장이 훨씬 큰 한국이 가공 녹용을 중국에 파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높은 팁 가격을 형성한 중국이 생녹용 전지를 먼저 확보해 건조 후 팁을 따낸 후 나머지 몸통을 한국에 파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이제는 중국 정부의 농업자금을 우회로 이용하는 중국회사들이 뉴질랜드산 생 녹용의 최대 구매자이자 한국 시장의 최대 건 녹용 공급자가 되었습니다.

 

구매량은 뉴질랜드 우수등급 연간 생산량의 50%를 넘고, 국내한의원에 유통되는 뉴질랜드 산 녹용도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건조한 녹용일 정도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원산지 규정에 따라 건 녹용과 생 녹용 수입 통관 시 동일한 HS코드를 적용하므로 중국에서 건조한 녹용도 원산지는 뉴질랜드로 표기되어 유통되고 있기에 구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_ 녹용 팁을 따낸 다음 절편 한 모습  좌우_ 원형을 그대로 절편 한 모습

 

녹용의 분골 팁 부분은 녹용의 기운이 밀집된 중요 부분이므로 이를 제거하면 약성에 심대한 손상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팁이 없어진 녹용은 정보가 공유되어야 하며, 가격 면에서도 다시 한 번 고려해볼 요소입니다.

 

한국은 녹용 사용의 종주국이며 그 중심에 한의사가 있습니다. 의약품으로서의 녹용은 한국 한의사의 강력한 치료 무기로서 임상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의약품 녹용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용을 통해 중국이 주도하는 뉴질랜드 녹용 유통 구조가 한의사들의 힘으로 변화되어 다시 대한민국이 녹용 산업의 주도권을 갖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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