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이야기/끄적끄적

MBTI는 믿을 만 한가?

by 이진복한의원 2020. 10. 6.

정재승 교수님 페이스북 글 인용해 왔습니다. 너무 공감중이라는~~!!

 

MBTI는 믿을 만 한가?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에게는 심리유형이 존재한다’는 과감한 주장을 담은 『심리 유형』(Psychologische Typen, 1921)이라는 책을 100년 전에 출간하죠. 융의 친구인 영국의 분석 심리학자 H. G. 베인스(Helton Godwin Baynes: 1882-1943)는 그것을 영어로 옮겨 『Psychological types』를 출간해 세상에 널리 알리고요.

이 책에서 칼 융은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자신의 판단이 중요한가, 타인으로부터의 시각이나 인정, 관계가 더 중요한가에 따라 크게 내향성과 외향성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심리적 기능에 따라서 지각 기능인 감각과 직관, 판단 기능인 사고와 감정으로 나누어서, 총 8가지 심리유형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산업계에서 성격 유형에 맞춰 업무를 배당해 업무효율을 높일 목적으로 작가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 Briggs와 그의 딸 이저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 Myers (정치학 전공)이 만든 성격유형 검사지가 바로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또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입니다.

브릭스와 마이어스 모두 전문적인 심리학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기존의 여러 심리학 이론들을 짜깁기해 MBTI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 칼 융의 이론이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됐구요.

저는 2008년 무렵, ‘MBTI는 믿을 만한가?’라는 주제로 KAIST에서 국제컨퍼런스를 연 적이 있습니다. 전세계 MBTI 지지자들과 반대파들을 모아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었습니다. 무지 재미있었지요!

우선 인간에게 심리적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이 대체로 동의하였고요, 다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심리유형 구조를 띄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저도 논문을 쓸 때 big five 같은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성격 검사지를 사용하긴 합니다만, 제 경험상 big five 조차도 인간의 성격 유형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지는 못 한다고 여겨집니다.

MBTI에 대해서는 (1) 비전문가가 짜깁기 해서 만든 성격 검사지표 라는 것 외에도, (2) 과학적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브릭스나 마이어스가 중요한 근거로 삼은 칼 융의 이론도 인간 뇌나 성격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시기에 나온 이론이라, 융 자신도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역사적 맥락에서 찾았습니다.

제 기억에는, 융은 고대 그리스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노시스주의와 교회의 신학 논쟁, 유명론과 실재론, 중세의 루터와 츠빙글리 사이에 벌어진 성찬식 논쟁 등 심리유형의 존재에 눈을 떴던 인물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지요.

(3) 제가 보기에 MBTI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격 유형이 0과 1사이의 어느 지점인 일종의 스펙트럼인데, 이것을 I or E, P or J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지표를 정하는 것이 매우 부적절해 보입니다.

MBTI는 93개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16개 타입의 성격 유형 중 하나로 결정되게 되는데, I와 E만 보더라도 한 사람이 외향성이나 내향성 어느 한 가지 태도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두 태도를 모두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I가 51% 이든, 75% 이든, 90% 이든, 모두 I 타입이 되는 것이지요. 나머지도 마찬가지고요.

융 자신도 책에서 인간은 어느 하나의 유형만 갖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성격이 있을 뿐이라고 조심스럽게 주장하고 있는데, MBTI는 ENTP, INTJ 등 하나의 유형으로 확정해 사람의 성격을 유형화 하지요.

(4) MBTI에 대한 가장 큰 학계의 비판은 부실한 정확도입니다. 같은 피험자들에 대해 5주 후에 다시 재면 50% 가까운 피험자들에게서 이전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논문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검증을 해 본 결과 MBTI가 매우 신뢰도가 낮고 부정확하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여럿 있습니다.

(5) 제가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재미로 보는 MBTI 검사결과 공부 잘 하는 유형 top5’ ‘MBTI 로 보는 가장 잘 맞는 궁합’ 등 아무런 근거도 없고 매우 비과학적이며 위험하기까지 한 시도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재미로 보는’이라는 단서를 단다고 해도 우려스럽습니다.

이 검사로 여러 회사들이 매년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하지요. 우리 모두 이런 걸로 상업적으로 놀아나지 말자구요.

'일상이야기 >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나 강의를 수원으로 다녀왔습니다.  (0) 2020.11.16
새벽.  (0) 2020.11.14
쉬어 가기  (0) 2020.10.05
하늘, 별.....  (2) 2020.09.11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말하다 2회(김누리 교수)  (0) 2020.09.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