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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야기/Magazine

세로토닌의 두 얼굴

by 이진복한의원 2021. 3. 17.

수년 전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 인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만과 우울증에 대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구촌 사람들 대다수가 매일 매일 끼니를 때우는 걱정에서 벗어나자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걱정거리가 그 자리를 채운 셈이다.

예전에는 우울증을 마음의 꾀병이라고 치부했지만 자살 가능성 등 심각함이 인식되면서 이제는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우울증 약을 먹는 게 그렇게 숨길 일도 아닌 분위기다. ‘프로작’으로 상징되는 우울증약은 대부분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다. 즉 우울증 환자들은 대체로 뇌에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한데, 뉴런 사이에서 작용하는 세로토닌이 회수되는 걸 방해해 결과적으로 세로토닌 농도를 높이는 효과를 주는 약물들이다. 이전 약물에 비해 효과는 크면서도 부작용이 작기 때문에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세로토닌은 이제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됐다. 즉 뇌에 좋은 생체물질로 각인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세로티닌의 또 다른 맨얼굴이 공개됐다. 몸에 세로토닌이 많을 경우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또 세로티닌 수치를 낮추면 비만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21세기 인류를 위협하는 우울증과 비만이 하나는 세로토닌이 낮아서 하나는 높아서가 원인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1세기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우울증과 비만에는 생체분자인 세로토닌이 관여돼 있다(전부는 아니지만). 즉 뇌에서는 Tph2 효소가 세로토닌을 제대로 못 만들어서, 몸에서는 Tph1 효소가 너무 잘 만들어서 문제다. Tph2와 Tph1은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을 5-HTP라는 분자로 바꾸고, 5-HTP는 또 다른 효소의 작용으로 세로토닌으로 바뀐다. 현재 우울증 약은 세로토닌 재흡수를 막아 뇌의 세로토닌 농도를 끌어올려 작용한다. 최근 실험 결과 몸의 Tph1 효소의 작용을 방해해 세로토닌을 잘 못 만들게 할 경우 비만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강석기

세로토닌이 체내 열생성 막아

그런데 이 논리를 따르면 적어도 한 사람이 동시에 우울증과 비만으로 고민하는 경우는 없어야하지 않을까. 머리에서는 세로토닌이 모자라고 몸통에서는 넘쳐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뇌에 작용하는 세로토닌과 몸통에 작용하는 세로토닌은 서로 별개의 장소에서 다른 효소가 작동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뇌에서 작용하는 세로토닌은 전체 세로토닌의 5% 밖에 안 된다. 나머지 95%는 뇌를 뺀 몸 전체에 작용하는데 대부분 장크롬친화성세포라는 장벽에 있는 내분비세포에서 만들어진다. 실제 세로토닌은 장의 연동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만든 세로토닌을 장이 다 쓰는 건 아니고 혈액으로 들어가 온 몸을 돌며 호르몬으로 작용한다.

이번에 ‘네이처 의학’에 실린 논문은 세로토닌이 갈색지방세포와 베이지색지방세포가 활동하는 걸 방해한다는 내용이다. 보통 지방세포하면 여분의 지방을 저장하고 있는 세포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백색지방세포에 해당하는 일이다. 우리 몸에 소량 존재하는 갈색지방세포과 베이지색지방세포에서는 오히려 지방을 태워 열을 내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속의 작은 난로인 셈인데 이 과정을 ‘열생성(thermogenesis)’라고 부른다.

흥미롭게도 비만인 사람들은 대체로 갈색지방세포와 베이지색지방세포의 활성이 떨어진다. 즉 열생성으로 태우는 지방이 적기 때문에 살이 쪘다고도 볼 수 있으므로 앞뒤가 맞는 현상이다. 비만인 사람들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몰랐는데 이번에 그 원인 물질이 밝혀진 셈이다. 예상하겠지만 바로 세로토닌이다.

세로토닌은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에서 만들어지는데, 뇌세포에서는 Tph2라는 효소가 작용하고 장크롬친화성세포에서는 Tph1이라는 효소가 작용한다. 따라서 Tph2 유전자가 고장나면 뇌에 세로토닌이 부족해지고 Tph1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몸을 도는 세로토닌이 부족해진다. 그 결과 증상도 달라 Tph2가 고장난 생쥐는 성장 이상과 함께 새끼를 돌보지 않고 수면 장애를 보인다. 반면 Tph1이 고장난 생쥐는 행동에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지만 지방이나 포도당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Tph1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에게 고지방사료를 먹였다. 비교군인 정상 생쥐는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뚱뚱해졌지만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는 체중증가 속도가 훨씬 느렸다. 또 간의 지방 비율도 훨씬 낮았고 혈당수치도 낮았다. 한마디로 과잉의 영양분이 살(지방)로 가지 않은 것이다.

생쥐의 갈색지방조직 활성을 조사해보자 정상 생쥐에 비해 Tph1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가 산소소모량이 많았고(즉 지방을 많이 태웠고) 따라서 조직 주변의 온도도 더 높았다. 결국 과식을 할 경우 몸의 세로토닌이 갈색지방조직의 활동을 억제해 여분의 지방이 소모되지 못하고 체지방으로 축적돼 비만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상 생쥐의 몸속 세로토닌 농도를 줄이거나 그 작용을 방해할 경우 비만을 억제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연구자들은 Tph1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물인 LP533401을 정상 생쥐에 투여했다. 그 결과 몸을 도는 세로토닌의 농도가 떨어진 생쥐들은 고지방사료를 먹어도 살이 찌는 정도가 훨씬 덜했고 혈당수치도 약물을 주지 않은 비교군에 비해 낮았다.

세로토닌 발견을 보고한 논문은 1948년 발표됐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혈관에 미치는 작용이 처음 알려졌다. 즉 혈청에서 존재하고(sero) 혈관을 수축시키는 작용(tonin)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뒤 다양한 작용이 밝혀졌지만 뇌에서 기분에 미치는 역할이 워낙 주목을 받다보니 다른 작용들은 간과된 면이 있다. 이번에 비만에 미치는 영향까지 밝혀짐에 따라 세로토닌은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주요 문제 두 가지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로 부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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