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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야기/Magazine

“35년간 교직 생활 마감…은퇴 후 10만여장의 한약재 사진 정리”

by 바른치료 이진복한의원 2021. 8. 14.

안녕하세요.

전주 이진복한의원 이진복원장입니다. 

학교 은사님이신 주영승 교수님께서....

어느새 정년퇴임을 하시네요. 정말 학교 다닐때 본초 배우면서 많이 존경했고, 졸업 이후에도 학교 병원일 신경 써 주신 분입니다. 개원 후에는 지인 분들 치료도 부탁하고 하셨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죠. 

2-3년새 많이 늙으셨네요. ㅜㅜ

운곡 본초학 책은 정말 저 퇴임할 때까지 계속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한의학자로서의 삶의 흔적 정리…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는게 소임
한의대 공동교재 개발작업서 ‘본초학’ 교재 가장 먼저 발간 “기억에 남아”
주영승 교수(우석대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최근 35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주영승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로부터 지난 교직생활에 대한 소회와 함께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본다.  

 

Q. 35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교수 발령을 받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결코 후회하지 않을까를 생각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35년이 훌쩍 지나 퇴임을 맞이했다. 여한이 없는 삶을 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 역시 참으로 아깝고 애석했던 시간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지금 느끼는 솔직한 심정은 한의계 상황, 특히 미래 한의학의 주축인 한의대의 모습이 취약해지는 모습에서 착잡한 마음이다. 개인적으로는 나 혼자만 좋았던 시절을 보내고 떠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후배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있다.”  

 

Q. 지난 교직생활을 돌이켜본다면?

“원광대학교 본과 1학년 때 지도교수인 신민교 교수님으로부터 본초학 전공 연구자로서의 제안을 받은 이후 대학생활 모두를 이에 맞춰 지냈던 것이 교직생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는 관계로 원광대 출신 최초로 개원해 임상의로 생활을 하던 중 임상 4년째 되던 시기에 원광대의 부름을 받아 원광대 교수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새로운 땅에서 새 그림을 그리도록 하라’는 은사님들의 말씀에 따라 1988년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개교와 더불어 우석대로 직장을 옮겨 33년을 봉직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초창기 대학인 관계로 제 뜻과 달리 학교 보직 등으로 시간을 뺏기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우석대에서의 생활은 현실적인 어려움 모두가 황무지를 개척한다는 심정이었기 때문에 새로웠고 의욕이 넘친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1998년 한의대의 근본적인 개혁 시도가 학생과 교수들의 이해 부족으로 좌절을 겪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보직에서 손을 떼게 되고 개인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 주어졌던 것 같다. 

 

개인 연구를 통해 그렇게 하고 싶고 우리 세대에서 최소한 기초작업이라도 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한약재의 객관화 작업 중 가장 기초가 되는 자연상태와 약재상태의 기준설정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고, 20여년 동안의 골격작업을 지난 2017년에 마치고 정년을 맞이하게 돼 무엇보다도 기쁜 마음이다.” 

 

Q. 정년퇴임 후의 계획은?

“본초학자로서의 제 생활은 모두 본초학이론 및 실제 정리에 맞춰져 있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진품과 위품의 논란 및 등급 문제 등을 해결키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한약재의 초기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문헌에 기록된 내용조차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실제 변화무쌍한 자연품의 내용을 현장 확인을 하지 않고 파악하는 것은 ‘수박 겉 핥기’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저는 감히 국내의 한약재 자생지를 모두 확인했다고 말할 수 있고, 외국 자생지도 공식적으로 100회가 넘는 중국 채집을 포함 세계 각국의 약용식물조사지역을 대부분 확인했다. 이렇게 해서 정리된 사진자료가 20만장 정도 되며, 이 가운데 10만장의 사진자료를 1차로 정리해 공정서 수재 한약재 494품목 1027종에 대해 전체 사진 4115컷으로 ‘운곡본초도감’에서 정리한 바 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진, 즉 아직 구체적인 분류를 하지 못한 사진자료 10만장이 남아있다. 퇴직 후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10만장의 사진 분류인데, 정상속도로 진행하면 7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직접 현장에서 확보한 사진자료는 자기 스스로가 아니면 분류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이같은 모든 사진자료는 제가 한의학자로서 살아온 흔적인 만큼 정리해서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했기에 주저없이 은퇴 후의 계획으로 정하게 됐다.” 

 

Q. 본초학 발전에도 많은 역할을 해왔다.

“공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전국한의대본초학공동교재’ 편찬이다. 이는 1991년 전국 한의대 축제인 ‘행림제’에 참석했던 각 대학 보직교수들 모두 전공별 공동교재 필요성에 공감했고, 이를 발판으로 본초학에서 최초로 공동교재를 발간했다. 이후 2002〜2019년까지 제가 2대 교재편찬위원장을 맡아 7차에 거친 개정·보완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본초학이론을 총정리한 ‘운곡본초학’과 본초약물 감별을 총정리한 ‘운곡본초도감’의 발간이다. 보다 완전에 가깝게 정리코자 각종 문헌 탐색 및 한약재라고 이름 붙은 종류를 가능한 찾아다니고 이를 다시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책자로 발행하는 일에 모든 지식과 체력을 쏟았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이같은 모든 일이 국가 혹은 한의계의 사업으로 일찍부터 진행됐으면 훨씬 효율이 높았을 텐데’라는 것이다. 실제 개인적인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2011년에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제안의 일부를 받아들여 ‘본초감별도감’ 편찬 작업이 진행됐고, 한의계에 커다란 실적물로 현재 자리잡고 있는 사례를 보면서, 향후에는 이같은 공적인 작업이 당연히 국가 및 공공기관의 주도 하에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Q. 한의신문에 연재를 지속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매월 1회씩 84회에 걸쳐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약재의 대부분을 ‘한약재 감별 정보’라는 연재를 통해 정리한 바 있다. 한약재 사용의 주체인 한의사들이 정확한 한약재 감별정보를 알아야 된다는 생각에, 이 연재를 통해 한약재의 보다 구체적·실질적 감별기준을 제시했다. 

 

연재 게재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제 눈에 비친 한의계에서의 한약재 활용은 이전에 비해 많이 미흡했다. 제가 한의사 생활을 시작했던 1980대에는 한의의료기관의 주된 수입원은 90% 이상이 한약이었다. 한의학이 큰 사랑을 받았던 당시에도 한의학은 관련 학문에서의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었고, 주된 수입원이 한약이다보니 ‘한약은 비과학적이다’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다행히 국민들의 신뢰가 높아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즉 당시의 한약은 수많은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촌스럽지만 아름답고 순박한 시골처녀’ 모습이었다면, 현재는 40여년 동안 한껏 멋을 내어 이론 및 실제 정리를 끝냈음에도 그동안 신랑이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난 격이 된 것 같다. 

 

이제 한의계 스스로 ‘집 나간 신랑 되돌리기 프로젝트’를 작동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해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문적인 무장을 급하게 보강해야 하며, 그 중에서도 부족함이 노출돼 있는 한약재 및 처방에 대한 보완작업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최근에는 ‘한약처방 본초학적 해설’을 연재하고 있다.” 

 

Q.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우선 한의대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다. 한 집안의 장래는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미래 주인공인 한의학도들의 의식 및 수준이다. 한의학이라는 길을 선택한 계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일생의 업으로 삼아야 하는 한의학이 과연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점검의 결과점수는 스스로의 삶의 결과로 연계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또한 임상의 혹은 연구직의 한의사 회원들은 스스로에게 힘을 주고 가치를 부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상의는 환자 치료에서, 또 연구직은 연구 결과를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아갔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교수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무엇이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인지는 교수들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르쳐야 한다는 단순한 자리매김이 아닌, 훌륭한 지식의 확실한 전달을 위해 ‘대학의 연구실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줬으면 한다.  

 

한평생 사랑하고 매달렸던 본초학을 연구해왔던 대학을 이제 공식적으로 떠난다. 온힘을 다해 매진하고자 했던 학문의 길에서 과연 이제까지 최선을 다했는가? 혹시 한의학에 더욱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버리거나 놓치지는 않았는가?를 살펴보고, 이제 야인 연구자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려고 한다. 기도 속에서 모든 분들의 건투와 행복을 기억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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