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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야기/Magazine

[프리즘] 한의사는 동의보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by 이진복한의원 2016. 3. 16.


“사실, 허준의 동의보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의사 A씨와의 대화 한토막이다. 황당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명의로 꼽히는 허준과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동의보감을, 그것도 한의사가 좋아하지 않는다니…

내막은 A씨가 최근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논란과 관련해 울분을 토하면서 드러났다. 의사들이 “X-레이나 초음파 기기가 동의보감 어디에 나오느냐”며 말끝마다 동의보감을 들먹여서 그렇다는 거다. 의사들은 첨단의료기술을 맘껏 누리면서 한의사는 동의보감에 나오는 대로만 진료를 하라는 얘긴데 괘변이다. 한옥에 산다고 세탁기, 냉장고, 가스렌지를 들이지 말라는 격이다.

의사와 한의사 간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은 어쩌면 ‘밥그릇싸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장보러 가다가 손목을 접질려 한의원을 찾은 가정주부 A씨는 X-레이를 찍기위해 아픈 몸으로 정형외과를 왕복해야 하고, 그 와중에 안써도 될 병원 초진진찰료 1만4000원까지 덤터기를 썼다. 퇴근길에 발목을 삐끗해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외근직 영업사원 B씨는 사후 병가처리를 하려다보니 회사에 거짓말을 한 모양새가 돼 당혹스럽다. 회사에 제출한 X-레이 사진상 발목은 멀쩡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침치료로 상태가 호전된 후 따로 병원에 가서 찍어야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현행 의료법에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때문에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지침을 내려줘야 한다. 하지만 국민건강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복지부는 소극적으로 일관하며 세월만 허송했다. 2014년 12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규제 개선을 위한 지침을 만들겠다고 밝혀놓고도 1년을 훌쩍 넘긴채 아무런 조치가 없다. 이로 인해 한의사가 특정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되풀이 된다.


한의사가 X-레이나 초음파 같은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것은 정확한 진료와 국민불편 해소를 위한 일이기도하지만 한의학의 과학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의료기기사용 제한이 없는 중국의 중의학은 객관적 진단과 예후 관찰이 가능하다. 이런게 원동력이 돼서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세계 전통의약시장은 2050년 60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의학육성계획만 발표하고 강건너 불구경인 우리와 달리, 중국정부는 중의약의 세계화를 위해 예산을 집중투입하고 있다.

더이상 방관할 때가 아니다. 자꾸 실현가능성이 요원한 ‘양한방 일원화’라는 방패 뒤로 숨은 채 그때까지 국민에게 불편을 강요해선 안된다. 오직 어느 쪽이 국민건강에 보탬이 되고 국가 전체적으로 더 이익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국민의 불편을 신속하게 해소하는 쪽으로 움직이면 될 일이다. 그게 복지부의 존재이유 아닌가.

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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